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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의 참정권, 이제는 당연한 권리로 인정받아야 한다

병원 관리자
202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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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어서 좋았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함을 느꼈다."

 

지난 5월 29일과 30일, 경기도립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 들려온 환자들의 목소리다. 이들은 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에 참여한 후 남긴 소감을 통해, 그동안 우리 사회가 놓쳐왔던 중요한 가치를 일깨워주었다. 바로 정신장애인도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며, 참정권은 그들에게도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다.

 

희망과 현실 사이에서 놓치는 권리

"그때까지 나더러 여기 있으라는 것이냐." "나는 곧 퇴원한다."

 

거소투표 신청 안내를 받은 정신의료기관 입원 환자들의 전형적인 반응이다. 퇴원에 대한 간절한 희망은 현실적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한 달 후 선거일까지 병원에 머물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거부하고 싶은 마음, 그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선거일이 다가와서야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퇴원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와서 "선거를 하고 싶다"고 말해도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족들은 생업에 매달려 있고, 병원은 안전상의 이유로 외출을 꺼린다. 결국 환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참정권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정신장애인의 기본권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보여준다. 제도는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거소투표라는 제도가 존재하지만, 정신의료기관 입원 환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제도와 현실의 괴리

지난 4월, 지역보건소와 지역선관위는 노인요양시설, 정신건강증진시설 등을 대상으로 거소투표 안내를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참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특히 정신의료기관의 참여는 미미했다. 

 

거소투표 제도의 한계는 명확하다. 환자가 직접 신청해야 하는 부담, 선거일로부터 약 한 달 전까지라는 짧은 신청 기한, 그리고 무엇보다 퇴원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인한 신청 기피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거소투표 신청 기한 이후에 입원한 환자들은 아예 배제된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해외 거주 국민들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드러난다. 최근 언론에서는 거소투표나 재외국민 투표일을 놓친 해외 거주민들이 투표만을 위해 급거 귀국하여 사전투표에 참여한다는 기사들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의지로 참정권을 행사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이들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폐쇄병동 비자의 입원 환자들은 어떤가? 아무리 투표하고 싶어도 스스로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거주지가 해외든 병원이든, 모든 국민의 참정권은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서 볼 때, 이는 명백한 권리의 불평등이다.

 

작은 노력이 만든 큰 변화

경기도립정신병원의 시도는 이런 현실에 대한 작지만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병원은 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 경기도립정신병원지부와 협력하여 '사전투표 지원단'을 구성했다. 윤영환 병원장을 단장으로 한 이 지원단은 체계적이고 안전한 투표 지원 시스템을 구축했다.

 

전문의가 환자의 외출 가능 여부를 진단하고, 보호의무자의 동의를 확보했다. 투표소까지의 안전한 이동을 위한 차량을 준비하고, 이동 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안전 대비책도 마련했다. 이 모든 과정이 환자의 안전과 권리 보장을 동시에 고려한 세심한 배려였다.

 

보호의무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들은 "환자가 투표를 하고 싶어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병원에서 지원해준다니 감사하다"며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거주지에 보관 중이던 신분증과 외출복을 사전투표 전날까지 직접 가져다주는 등 가족들의 협조도 이어졌다.

 

총 9명의 환자가 사전투표에 참여했다. 숫자로는 작을 수 있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이들의 투표 참여는 정신의료기관에서도 크지 않은 노력으로 환자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image01.png사진=경기도립정신병원 제공

 

시민으로서의 존재감 회복

 

투표를 마친 환자들의 소감은 단순한 만족감을 넘어선다. 이들은 "사전투표를 하게 되어 좋았다",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어서 좋았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참정권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투표는 단순한 정치적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정신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 권리가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들의 소감은 명확히 보여준다.

 

한 환자의 말,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메시지는 특히 인상적이다. 이는 투표 참여를 통해 시민으로서의 자존감과 존재감을 회복했음을 의미한다. 정신질환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격리된 상황에서도, 민주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확산돼야 할 모델

경기도립정신병원의 사례는 해결책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금만 신경 쓰면, 관계기관의 협조만 있으면 사전선거를 통한 투표 참여가 충분히 가능하다. 병원 관계자들이 이 점에 관심을 갖고 노력한다면, 더 많은 정신장애인들이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 정신의료기관 중 유일하게 폐쇄병동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주 1회 인권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경기도립정신병원의 이번 시도는, '비강압적 인권치료'의 실질적 모델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것이 한 병원만의 특별한 사례로 그쳐서는 안 된다.

 

많은 국민들이 정신의료기관에서도 크지 않은 노력으로 환자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인식의 확산이야말로 정신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

이 문제는 개별 병원의 선의에만 맡겨둘 수 없다. 폐쇄병동 비자의 입원 환자가 스스로의 의지로는 투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자의 인권과 권익 보호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법조문과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극이 존재한다. 참정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정신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 권리가 사실상 박탈되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경기도립정신병원의 작은 시도가 전국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것이 정신장애인의 인권과 권익 보장을 위한 더 큰 변화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정신장애인의 참정권 보장, 이제는 선택이 아닌 의무다.

 

경기도립정신병원은 경기남부지역의 정신응급 중추병원으로서 비강압적 인권치료에 앞장서 왔으며, 작년 7월부터는 전국 지자체 최초로 마약중독치료센터를 개설하여 공공 정신병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신과적 치료를 받는 환자의 기본적인 인권보장과 권익보호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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